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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수반 목록


프랑스 정부수반 목록


이 문서는 1598년부터의 프랑스 정부 수반 명단이다.

프랑스는 왕정복고 시대인 1815년의 국무회의 의장인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부터 현 총리(2020년), 장 카스텍스까지 총 172명의 정부 수반을 두었다.

정부 수반 직함

역사적으로 프랑스 정부 수반 직위는 여러 직함으로 다르게 불렸다.

  • 앙시앵 레짐 : 수석국무장관(Principal ministre d'État)
  • 1792-1815: 정부수반 부재
  • 1815-1849: 국무회의 의장(président du Conseil des ministres) (부재 기간 존재)
  • 1849-1869: 정부수반 부재
  • 1870: 내각수반(chef du Cabinet)
  • 1870-1871: 국민방위정부 통령(président du gouvernement de la Défense nationale)
  • 1871-1876: 국무회의 부의장(vice-président du Conseil des ministres)
  • 1876-1940: 국무회의 의장(président du Conseil des ministres)
  • 1940-1942: 국무회의 부의장(vice-président du Conseil des ministres)
  • 1942-1944: 정부 수반(chef du gouvernement)
  • 1944-1947: 임시정부 통령(président du gouvernement provisoire)
  • 1947-1959: 국무회의 의장(président du Conseil des ministres)
  • 1959- : 총리(Premier ministre)

"총리(Premier ministre)"라는 직함은 오직 1959년 이후(제5공화국)부터 사용된 직함이나, 앙시앵 레짐 시절 쉴리(1589년)부터 튀르고(1789년)에 이르기까지 국왕 수석장관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 표현이다. 1815년부터 1959년까지 전통적으로 정부 수반을 일컫는 직함은 국무회의 의장(Président du Conseil)이었다. 국가 수반과 의회의 관계에 있어서 정부 수반라는 존재는 의회체제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국무회의 의장은 루이 필리프 치세에 매우 중요한 직함으로 여겨졌다. 국무회의 의장이라는 직함은 1849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제와 함께 사라졌으나 1871년에 먼저 국무회의 부의장(vice-président du Conseil)이라는 직함으로 부활했다. 헌법 투표로 제3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국무회의 부의장은 1876년 다시 국무회의 의장이라는 직함을 되찾았으나, 이전 체제에서처럼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채 있었다. 결국 국무회의 의장은 제4공화국의 도래(1946년)와 함께 공식화되었으며, 이후 제5공화국에서는 총리(Premier ministre)라는 직함이 도입되었다.

연보

앙시앵 레짐 (1598-1792)

앙시앵 레짐 시절, 프랑스 총리로도 불린 수석국무장관은 수석 고문이자 프랑스 왕의 정부 수반이었다. 직함과 직무는 공식적인 것으로, 왕은 전권을 지녔다.

다음 목록은 공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총리직을 수행한 여러 인물들을 나열한 것이다.

1792-1814 시기

1792년부터 1815년까지 뒤이은 체제들에서는 정부 수반 직위가 부재했다.

1차 왕정복고 (1814-1815)

백일천하 (1815)

2차 왕정복고 (1815-1830)

7월왕정 (1830-1848)

제2공화국 (1848-1852)

명단

기간

제2제국 (1852-1870)

제2제국 시기, 장관들은 사실상의 정부 수반이라 할 수 있는 황제의 변덕에 따라 임명되고 해임되었다. 제국이 몰락할 무렵에는 에밀 올리비에와 샤를 쿠쟁몽토방이 "내각수반(chef du Cabinet)"이라는 직함을 지녔다.


국민방위정부 (1870-1871)

제3공화국 (1871-1940)

명단

특이사항

  • 다음 9명의 정부 수반은 국무회의 의장으로 임명될 때 국회의장이었다. 루이 뷔페, 레옹 강베타, 앙리 브리송 (1, 2기), 샤를 플로케, 장 카지미르페리에, 샤를 뒤퓌, 폴 팽르베 (2기), 에두아르 에리오 (2기), 페르디낭 부이송
  • 그 중 5명은 한 차례 더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샤를 플로케, 장 카지미르페리에, 앙리 브리송, 에두아르 에리오 (2기), 페르디낭 부이송
  • 쥘 멜린은 국무회의 의장이 되기 전 국회의장에 재임했으며, 레옹 부르주아는 이후 국회의장이 되었다.
  • 다음 5명의 정부 수반은 이후 상원 의장이 되었다. 쥘 페리, 에밀 루베, 아르망 팔리에르, 레옹 부르주아, 가스통 두메르그
  • 다음 5명의 정부 수반은 훗날 대통령이 되었다. 아돌프 티에르, 장 카지미르페리에, 에밀 루베, 아르망 팔리에르, 가스통 두메르그
  • 두 명의 정부 수반은 임기중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에 올랐다. 레몽 푸앵카레, 알렉상드르 밀랑
  • 두 명의 전 대통령은 다시끔 국무회의 의장이 되었다. 레몽 푸앵카레(두 차례), 가스통 두메르그
  • 피에르 발데크루소, 조르주 클레망소, 레몽 푸앵카레는 제3공화국을 통틀어 약 삼 년 동안 연이어 임기를 보낸 세 명의 국무회의 의장이다.
  • 다음 정부 수반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알베르 드 브뢰유, 쥘 뒤포르, 레몽 푸앵카레, 조르주 클레망소, 필리프 페탱

기간

프랑스국/자유 프랑스 (1940-1944)

페탱 정부는 1940년 6월 22일 휴전 협정을 채결했다. 같은 해 7월 10일 비시에서 국회가 열려 페탱 장군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투표가 이뤄졌다. 다음날 페탱은 자신을 "프랑스 국가수반"으로 칭하는 입헌권를 행사하여, 이후 1944년 8월 20일까지 국가수반직을 맡게 된다. 페탱은 더 이상 공식적으로 국무회의 의장이 아니었으나, "행정권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음에 근거하여 이 직함 역시 유지하게 된다. 국가수반은 "국무회의 부의장"이 보좌했으며, 이 직함은 이후 정부체제에서도 자연스레 유지되었다. 국가수반과 정부수반의 직무가 애매하게 혼동된 이 같은 상황은 1942년 4월 18일 헌법에 "정부수반"의 직무가 국가수반의 책임하에 "프랑스 대내외 정책의 효율적 지도"를 확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공표될 때까지 이어졌다.

드 골 장군은 휴전에 반대하는 1940년 6월 18일 호소에 이어 런던에서 자유 프랑스 저항 조직을 이끌었다. 자유 프랑스는 제3공화국을 계승한 공화정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일한 정권이라 주장했다. 완전한 정부는 1941년 9월 24일 프랑스 국가위원회(Comité national français; CNF)라는 이름으로 성립하였다. 1943년 6월 3일 연합국에 의해 프랑스령 북아프리카가 해방되자, 자유 프랑스는 알제에 있던 프랑스군 및 시민 총사령부(Commandement en chef français civil et militaire)와 통합하여 프랑스 국가해방위원회(Comité français de Libération nationale; CFLN)를 창립하였다. 처음에는 샤를 드 골과 앙리 지로가 국가해방위원회 위원장을 공동으로 맡았으나, 1943년 8월 4일 드 골이 유일한 위원장으로서 행정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위원회는 1944년 6월 3일까지 일 년 간 프랑스 식민지의 일부를 통치했으며, 이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점차 해방되어가던 본토에서의 국권 행사를 위해 프랑스 공화국 임시 정부(Gouvernement provisoire de la République française; GPRF)로 명칭을 바꾸었다.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 (1944-1947)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GPRF)에서는 1946년 10월 27일 헌법이 도입될 때까지, 그리고 1947년 1월 제4공화국이 출범할 때까지, 정부 수반과 국가 수반이 동일하였다.

명단

기간

제4공화국 (1947-1959)

명단

특이사항

  • 다음 11명의 국무회의 의장은 임기 종료 이후 다른 장관직을 맡았다. 폴 라마디에, 로베르 쉬망, 앙드레 마리, 앙리 쾨이유, 조르주 비도, 르네 플레뱅, 에드가 포르, 앙투안 피네, 기 몰레, 모리스 부르제모누리, 피에르 플리믈랭
  • 에드가 포르는 이후 국회의장이 되었다.
  • 다음 두 명의 국무회의 의장은 임기 동안 대선에 도전했다. 조제프 라니엘 (1953), 샤를 드 골 (1958)
  • 다음 세 명의 정부 수반은 임기 종료 이후 대선에 도전했다. 앙투안 피네 (1953), 조르주 비도 (1953), 샤를 드 골 (1965)

기간


제5공화국 (1959-)

명단

기간

특이사항

  • 로랑 파비위스는 제5공화국 총리 중 가장 젊은 총리였다(임기 시작 기점으로 37세)..
  • 피에르 베레고부아는 제5공화국 총리 중 가장 나이 많은 총리였다(임기 시작 기점으로 66세).
  • 프랑수아 피용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총리직을 계속 맡은 유일한 총리이다. 즉 피용은 사르코지 임기 중의 유일한 총리이다.
  • 자크 시라크는 총리를 맡은지 몇 년이 지난 이후 다시 한번 총리로 임명된 유일한 총리이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임기에 6대 총리로, 이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임기에 10대 총리로.)
  • 에디트 크레송은 유일한 여성 총리이다.
  • 다음 두 명의 총리는 임기 종료 이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조르주 퐁피두 (총리 임기 종료 후 11개월 후), 자크 시라크 (임기 종료 후 7년 후).
  • 샤를 드 골은 1958년 간선 보통선거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정부 수반이었다. (제3공화국 시기 레몽 푸앵카레와 알렉상드르 밀랑도 정부 수반을 맡고있을 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다음 세 명의 총리는 임기 중 "동거정부" 상황에 놓였다. 자크 시라크, 에두아르 발라뒤르, 리오넬 조스팽. 세 총리는 모두 다음 대선에 출마하여 낙선하기도 했다.
  • 다음 네 명의 총리는 총리 임기 종료 이후 다른 장관직을 맡았다. 미셸 드브레, 로랑 파비위스, 알랭 쥐페, 장마르크 에로.
  • 다음 두 명의 총리는 국회의장을 맡았다. 자크 샤방델마스, 로랑 파비위스.
  • 다음 두 명의 총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미셸 드브레, 피에르 메스메르
  • 피에르 베레고부아는 임기가 끝나고 한달이 지난 1993년 5월 1일 자살했다.
  • 도미니크 드 빌팽은 선출직을 맡지 않은 유일한 총리이다.
  • 마뉘엘 발스는 프랑스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유일한 총리이다.
  • 로랑 파비위스, 리오넬 조스팽, 알랭 쥐페는 헌법평의회 의원으로 지명되었다.
  • 다음 두 명의 총리는 임기 전 대선에 출마했다. 미셸 로카르 (1969), 리오넬 조스팽 (1995).
  • 다음 세 명의 총리는 임기 중 대선에 출마했다. 자크 시라크 (1988), 에두아르 발라뒤르 (1995), 리오넬 조스팽 (2002). 세 명 모두 낙선했다.
  • 다음 여섯 명의 총리는 임기 종료 이후 대선에 출마했다. 미셸 드브레 (1981), 조르주 퐁피두 (1969), 자크 샤방델마스 (1974), 자크 시라크 (1981, 1995, 2002), 레몽 바르 (1988), 프랑수아 피용 (2017). 참고로 로랑 파비위스는 2007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사회당 후보 경선에 참가했으나 떨어졌고, 도미니크 드 빌팽은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충분한 후원자수를 채우지 못하여 출마 실패했으며, 2017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알랭 쥐페는 우파 및 중도파 후보 경선에, 마뉘엘 발스는 시민당 후보 경선에 참가했으나 떨어졌다.

각주

참고

참고 문헌

  • 필리프 아르당, Le Premier ministre en France, 몽크레티앵, 155쪽, 1991 ISBN 978-2-7076-0497-2
  • 라파엘 바케, L'Enfer de Matignon : Ce sont eux qui en parlent le mieux, 푸앵, 318쪽, 2010 ISBN 978-2-7578-1640-0

같이 보기

  • 프랑스의 정부
  • 국무회의 의장 (프랑스)
  • 프랑스의 총리
  • 프랑스 정부의 역사
  • 프랑스의 군주 목록
  • 프랑스의 대통령 목록

외부 링크

  • 프랑스 제5공화국 내각목록


Text submitted to CC-BY-SA license. Source: 프랑스 정부수반 목록 by Wikipedia (Historical)